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
여러분 혹시 2010년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스페인 팀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것 기억하세요?
아 너무 쉬운 것을 물어본다고요.
그러면 당시 스페인이 결승에서 무찌른 팀이 네덜란드였다는 것 기억하세요?
음, 벌써 해가 오래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시다고요.
자 그럼 한 번 더 여쭤보겠습니다.
당시 우승 팀을 미리 예언했던 문어 이야기 기억나세요?
축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저 역시 네덜란드가 준우승을 했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언의 능력을 지녀 2018년 월드컵의 공식 대사 자격까지 얻었던 문어 이야기는 선명히 기억이 납니다.
이 신통한 문어의 이름은 폴입니다.
폴은 독일 오베르하우젠이라는 작은 도시의 수족관에 살고 있습니다.
이 문어는 결승전 결과뿐 아니라 독일이 출전했던 8개의 경기 결과를 모두 정확히 예언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독일이 준결승에서 스페인에 짐으로써 결승 진출이 좌절되기 전날, 폴은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스페인을 선택하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도박사가 폴의 능력을 지녔었다면 지금쯤 천문학적인 돈방석 위에 올라앉아 있겠지요.
그러나 한 번도 틀리지 않고 8개 경기 결과를 맞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입니다.
수학자들에 따르면 이럴 확률은 0.39%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폴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것일까요?
아니면 동물들은 원래 우리가 모르는 초감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문어를 비롯한 동물들은 인간만의 유별난 오류인 도박사의 오류에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 이제는 여러분의 도박사적 잠재력을 테스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전을 던져 앞이 나오느냐 뒤가 나오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고 합시다.
연속적으로 동전을 던졌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9번 연속으로 앞면만이 나왔습니다.
이제 10번째 던지려는 순간 여러분은 적지 않은 돈을 걸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앞면입니까 뒷면입니까?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면을 선택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10번 연속으로 앞면이 나올 확률은 0.510=0.1%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시는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해가 되셨다면 여러분은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신 겁니다.
확률론에서 가장 초보적인 이론은 독립 시행(independent trial)에서 뒷 사건의 결과는 앞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전을 던지기에 앞서 앞면이 9번이 나왔든, 999번이 나왔든 다음번 동전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인 것입니다.
만약 지난 월드컵 결승 전날 여러분이 누가 우승할 것이냐에 돈을 거는 게 아니라, 폴의 예언이 또 맞을까에 돈을 건다고 상상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폴이 8번 연달아 결과를 맞힐 확률은 0.39%밖에 안 되니 폴이 틀리는 데 돈을 거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예, 맞습니다.
지금까지 세심하게 읽으셨군요.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면, 폴의 예언이 또 맞을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입니다.
따라서 폴이 틀렸다는 데 거액을 걸었다면 절대로 도박사로 성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도박장에 몰려드는 많은 일반인들은 이러한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번 따기 시작하면 행운이 자기편에 서기 시작했다며 판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연속으로 잃기 시작하면, 곧 딸 때가 되었다면서 역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슬롯머신을 애용하는 사람들은 기계를 ‘잡아놓는다’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논리는 만약 백 번 중에 한 번 잭팟이 터진다면, 내가 지금까지 99번 이 기계에서 돈을 잃었으니 그다음에는 잭팟이 나올 차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투자해왔던(?) 기계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바로 도박사의 오류에 지나지 않으며, 이 때문에 지금도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도박장에서 엉뚱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확률과 도박, 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세계 최초로 확률론에 대해 쓰인 저서는 그 이름이 《운수놀이 승부에 관한 책(Books on games of chance)》로서, 1526년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도박사였던 제롤라모 카르다노(Gerolamo Cardano)에 의해 쓰였습니다.
이 책은 도박에 관한 책답게 이항분포(二項分布)에 대한 전문적 설명과 함께 카드 게임에서 상대를 속이는 법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자 그럼 확률을 이용해서 과학적으로 도박을 했던 카르다노는 부자가 되었느냐고요?
어떤 면에선 맞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는 의사로 성공하기 전까지 도박을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댈 수 있었으니까요.
의사로 명성을 얻은 후에는 도박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도박인 자식들은 결국 아버지를 배신했습니다.
큰아들은 살인 기도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도박 빚에 쫓긴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의사에게 사주를 받아 아버지를 이단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아들로부터 고발당한 카르다노는 징역형과 함께 의사 자격을 몰수당했고 다시금 무일푼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도박으로는 아무런 부도 명예도 쌓을 수 없었고, 또 다른 의미로서의 도박사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입니다.